[베이징 2008] 돌려차기 뒤차기···'날았다 태권 V'
■57kg 이하급 임수정…5년간 대표 탈락 '2인자 설움' 날려 ‘뒤차기의 달인’답게 임수정은 자신의 주무기를 앞세워 여자 태권도 57kg이하급 8강에서 로빈 청(뉴질랜드)을 4-1, 4강에서 베로니카 칼라브레세(이탈리아)를 5-1로 완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탄리쿨루와의 결승전에서도 임수정은 경쾌한 발놀림을 바탕으로 뒤차기로 공격을 풀어 나갔다. 1라운드에서 경고 2개로 감점 1점을 받은 임수정은 2라운드에서 오른발 돌려차기로 득점에 성공, 팽팽한 0의 균형을 이뤘다. 운명의 3라운드에서 임수정은 경기 종료 20초를 남길 때까지 상대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종료 19초를 남기고 왼발 돌려차기를 시도하려는 탄리쿨루의 몸통이 임수정의 눈에 들어왔다. 임수정은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오른발 뒤차기를 날렸다. 그의 발이 상대 호구에 묵직히 꽂히면서 전광판에는 ‘1’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찍혔다. 우승을 확정하는 회심의 한 방이었다. 경기도 부천 부인중 1학년 때 태권도에 입문한 임수정은 스피드가 발군이었다. 한 템포 빠른 공격으로 소년체전을 2연패했고 전국대회에서도 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까지 무너뜨리며 ‘겁 없는 아이’로 떠올랐다. 서울체고에 진학한 그는 여세를 몰아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 태권도 대표팀 최연소인 만 16세의 나이에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일찍 핀 꽃은 빨리 시들게 마련이다. 2003년 세계선수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5년 세계선수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07 세계선수권 등 5개 국제대회 예선전에서 잇따라 탈락하면서 국가대표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잇따른 좌절에 그는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그는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다. 이때 아버지 임경환(53)씨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태극마크를 꼭 한 번 달고 그만두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아버지의 격려에 그는 용기를 냈다. 마음을 정리하고 베이징 올림픽에 모든 것을 걸었다. 임수정은 지난해 9월 베이징 올림픽 세계예선에서 1위에 올라 출전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세 차례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지긋지긋한 2인자의 설움을 날려 버리고 베이징 입성에 성공했다. 임수정은 “속으로 ‘올림픽이 아니다. 편안하게 하자’고 되뇌었다. 자신 있게 한 게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끝까지 집중한 게 마지막 뒤차기를 성공시킨 비결”이라며 “지난 6년 동안 무척 힘들었는데 마지막 기회에서 금메달을 따 기쁘다”고 말했다. ■68kg 이하급 손태진…작년 2중등록 파문 한때 그만둘 생각도 올림픽 남자 68㎏ 이하급을 손태진이 마침내 제패했다. 8년간 '노 골드'의 묵은 체증을 스무 살 청년이 말끔히 씻어내며 태권종가의 자존심을 살린 것이다. 16강부터 결승까지 매 경기 한 점 차 승리를 거두고 힘겹게 결승에 오른 손태진은 '맞수' 마크 로페즈(미국)를 3-2로 눌렀다. 지난해 9월 맨체스터 세계예선에서 5-4로 승리를 거둔 이후 기분 좋은 2연승이다. 손태진은 초반부터 활발한 공격으로 주도권을 잡았다. 1라운드는 2-0으로 리드했다. 그러나 2라운드에선 소극적인 경기를 펼치다 감점(1점)을 받은 데다 상대에게 몸통 공격을 허용해 승부는 1-1로 팽팽해졌다. 두 선수는 3라운드에서 서로 한 점씩을 주고받으며 2-2로 맞서 승부를 연장으로 넘기는 듯했다. 하지만 손태진은 경기 종료 2초를 남기고 회심의 몸통 돌려차기 공격을 성공시켜 피 말리는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손태진의 집안은 운동 가족이다. 아버지 손재용(46)씨는 고교시절 럭비 선수였다. 맏형 손태성(25)씨는 경북 영천중앙초등학교 유도 코치다. 경북체중에서 태권도를 시작한 그는 경북체고 2학년 때 아시아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았다. 경쾌한 발놀림과 다양한 발차기를 갖춰 대학과 실업팀의 스카우트 표적이 됐다. 지난해 실업팀에 입단하는 동시에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단국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세계의 벽은 높았다. 지난해 5월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태권도선수권에 출전했지만 1회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여기에 실업선수가 대학선수로 뛸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 규정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눈물을 머금고 그는 대학교 자퇴서를 썼다. 베이징으로 가는 길도 첩첩산중이었다. 국내에서만 세 차례에 걸친 평가전의 벽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재경기까지 벌인 끝에 막판에 3연승을 거두며 베이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주무기는 로페즈와의 결승전에서도 빛을 발한 돌려차기. 손태진은 "감독님이 경기 끝나기 직전에 공격을 하라고 지시를 하셨다. 2초를 남겨두고 감독님의 사인이 왔고 기술이 잘 들어갔다. 워낙 완벽하게 들어갔기 때문에 득점을 확신했다"고 말했다.